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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ption/mY eTude

내가 만나본 클래식 명인 - 여제 정경화, 강렬한 카리스마의 절대군주

최근 몇몇 명사 또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만나보며,
풍월당 쇼케이스 및 연주자들과의 만남을 자주 참여하며,
내가 만난 명인들이라는 시리즈의 글을 써보기로 했다.
(스압주의)

그 첫번째 명인은 유명하고 또 유명한 명실공희 전세계에서 인정한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 선생님이다.

제금가가 되고 싶어요

1947년 3월 평양에서 7남매중 셋째(?)로 태어난 그녀는
해방후 곧바로 들이닥친 전란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 난리통에도 피아노를 꼭 챙겨가시겠다는 어머니의 음악적 열정으로
음악의 길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고 하였다.
(알고보니 유명한 일화였다!!!!)

다들 알다시피, 정경화 선생님은 유명한 정트리오 남매중 하나이다.
오빠인 정명훈을 필두로 정경화, 정명화이며
1978년 세계에 정트리오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아무튼 선생님 모친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너무나도 대단하셔서,
전란을 피해 내려온 부산에서 평양냉면집을 하는 와중에도 유명한 음악가들을
가계 옆 별채에서 끊임없이 초청하였고 음악을 생활로 접하도록 하셨단다.
물론 선생님은 처음 피아노를 했었으나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하셨다.  ㅎㅎㅎㅎ

휴전 이후 서울로 올라와 다시 평양냉면을 크게 차리신 선생님의 모친께서는
별채에 유수의 음악가들을 초대하고 시간을 즐기도록 해주었으며,
냉면집 옆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었다고 한다.

그때 정경화선생님 께서는 음악가들이 어떤 악기를 하고 싶냐는 말에
당당하게 바이올린을 이야기 하셨고
세계에서 제일가는 "제금가" 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제금가는 당시 바이올리니스트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세계를 향한 꿈

이 어린 소녀는 1958년 당대 최고의 무대였던 이화·경향 콩쿠르에 참가한다.

검은 터틀넥에 검은 정장바지를 입고 당당한 기백을 내뿜으며 무대에 올라선 소녀는
당연하게 1위를 거머지고, 유학을 가게 되며, 당대 최고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들인
이작 펄만, 핑커스쥬커만
들을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  과
사제의 연을 맺고 쥴리어드에서 수학을 하게 된다.

선생님은 그때 자신 말고도 좋고 훌륭한 가족들이 있으니 꼭 추천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그래서 함께 언니오빠들이 수학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 이게 곧 정트리오 전설이 시작되는 서막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선생님에 대해서 글쓰며 찾아보니 전 가족이 다 이민을 가신것으로 보인다.)

마녀에서 여제까지

선생님은 그때 당시 상상할 수 없던 유일한 동양의 여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일본은 어떻게서든 먼저 동양의 선구자가 되고자 엄청난 재력과 시간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상황이였으나 여의치 않았고,
선생님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었으나,  국내에선 그저 무명의 유학생이였을 뿐이였다.

이 정경화선생님이 일본에서 얼마나 우상으로 추앙받는지,  클래식 음반가계를 보면
따로 선생님에 대한 섹션이 존재하신다고 한다!!!!
(우리는 Respect 에 대한 Attitude  역시 일본에 뒤쳐지며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미쿡의 공연 및 예술계는 "아이작 스턴" 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와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막강한 영향력아래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인가?  영화 에서 스폰이나 데뷔를 권유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가 바로 이사람이라는 설이 있더라.)


1965년? 16살??  의 나이였던 선생님은 레빈트릿콩쿠르 라는 당대 세계 최고의 콩쿨에
참가하겠다 하였고, 아이작 스턴이라는 대부가 이미 이탈리아에서 직접 발굴해 낸
유대계 천재인 "핑커 주커만" 을 후원하며 내정된 1위 솔리스트로 밀고 있었기에

그녀의 스승인 이반은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안위를 걱정하였고
그녀에게 상처가 될거라 했었다고 한다.
물론 그는 구태여 막지는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 포기할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죽는한이 있더라도 출전을 하겠다 하였고,
그 이유는 어머니께 미국으로 떠나기 전 한 약속 때문이였다고 한다.

다름아닌,  세계 최고의 콩쿨에서 우승을 하겠다는, 
어찌보면 그냥 단순한 꿈이나 다짐정도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결국 출전하였고 모든 심사위원들을 그녀의 첫 음을 듣는 순간 충격에 휩싸인다.
마피아 대부이자 공연예술계 대부의 체면은 구겨지게 생겼고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탈락이나 흠을 잡아내야했던 그들은
클래식 콩쿨에서 이례적이라 할 수 있을 행동인 "재대결" 을 주장하였단다.

하지만 이미 관중들과 다른 심사위원들은 이 어딘지 모를 나라에서 날아온
SmallDeep Black hairWoman 이 뿜어내는, 끝을 모를 카리스마에 매료된 상태였고,
결국 그녀와 주커만은 공동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는 전설이 생겨난다..

이 말씀 중에 '사실은 내가 더 잘한거였겠지?' 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는 모습이
정말 자신감이 넘치고 믿음이 있었던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검은 마녀는 처음으로 세상에 존재를 나타내었으나 정말 그녀가 마녀로 데뷔했을 수 있던 순간은
1970년 런던 심포니와의 공연
이라고 하셨다.

이작 펄만이 아이 출산으로 인해 중요 연주를 펑크내어 대신 연주자로 나섰던 순간이 기회가 되었다고 하신다.

처음 무대에 리허설을 위해 올랐을 때, 듣보잡 동양의 조그만 여성은
그들에게 그들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주게 되었고,
그로인해 그 연주자에게 창피를 줘야 혼내켜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원래 연주로 예정된 곡이 아닌 맨델스존을 갑자기 연주해 버린것이다.

맨델스존이라니! 다들 알다시피 그의 곡은 전주가 거의 없이 바로 시작하는데 말이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첫음을 듣자마자 당황하기는 커녕
'이것들 바라? 어디 내가 바로 따라잡아 주겠어!' 라고 마음먹으셨고,
결국 그들 모두에게서 존경을 이끌어 내셨다고 한다.

그 마음마저도 한올의 틈도 없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였고,
그렇게 마녀에서 여제로 삶을 살아오셨다고 한다.

앞의 런던과의 일에서 알 수 있듯이,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녀의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이 그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

꿈 -  좌절 -  꿈

지금 선생님은 사실 복귀하신 샘이다. 2005 년 열심히 준비한 연주회에
왼손 검지 부상이라는 치명적 이유로 무대에 올라,
"죄송합니다 손가락이 고장나 연주를 못하게 됐습니다. 이제 연주자로써는 끝인가봅니다."
 
라는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는 말씀을 하실때,  그 아픔이 고스란이 전달되어 왔다.
그녀의 연습량은 엄청났었을 것이며, 반대로 그 결과는 참담했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자신을 믿고 있던 마녀의 카리스마가 담담히 뱉어낸 이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할 고통이 가득 담긴 말이였을 것이다.

그 후로 연주자의 삶을 마치고 후학양성에 힘쓰시게 되었단다.
대관령음악콩쿨도 만드시고 국내 연주자를 양성하려 애쓰셨단다.

하지만 선생님은 바하의 무반주 소나타에대한 약속과 열망이 있었고
그것은 곧 선생님의 숙명/숙원 이 되었나 보다.

무단한 자기관리와 노력을 통해 2010년 드디어 부상을 딛고 복귀를 하시게 되었다.
꿈의 절정에서 좌절을 겪고 다시 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이다.

바흐의 우주,  정경화의 우주

선생님과 함께한 대담시간에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님은 바하의 그 순수함과 순수함에서 나오는 선율을 들으며 우주를 느끼셨다고 한다.

"바흐는 우주 어디에 가져다 놓아도 포옹을 할 수 있고
영적으로 놀랍도록 순수하고 깨끗해서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계속 살아 있을 거예요.
바흐의 신비함은 그어떤 영혼도 달랠 수도, 꿇어 앉힐 수도,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할 수도... 다 바흐에 들어있습니다."


그녀의 표현이 얼마나 진심으로 표현한 것인지는 이번 발매한 음반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에전당에서 갖게되는 독주회에서 알 수 있을것임에도,

그녀는 보다 확실하게 이야기 해주셨다.

"지금 전 오로지 바흐에 200퍼센트 300퍼센트 집중하고 있어요.
오로지 바흐밖에 머릿속에 없습니다.
이번 공연과 음반 이후 약 삼년에서 오년쯤 뒤에 다시 또 똑같은 곡으로
얼마나 우주가 넓어졌는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은퇴후 걱정은 언젠가 바하에 대한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였다는 선생님..

그녀의 위대함은 그 기교나 실력, 경력이 아니라
그녀의 바이올린과 음악에 대한 열정 가득한 마음,
우주를 품고 있는 그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모든 곡을 설명하실때 "따가다가 딴딴 딴따라라라딴딴 장장~~"
이렇게 직접 본인이 움직이며 소리로 들려주시는 모습에서,

그녀가 직접 느끼고 떠올리고 있는 악보의 노트를 직접 이미지화 시켜주시려는 열정....
그 모습은 카리스마의 여제내면에 갈무리한 체,
손자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혜가득한 여왕님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졌다.

선생님께 대한 설명은 여러 말이 필요 없었고,
내가 느낀 감정은 아래 표현으로 겨우 설명 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선생님의 우주를 공감하고,  그녀와 Connection 을 이루었다.